설교-음성&동영상

단1017-20 평안하라 강건하라

이성구 0 2,359 2005.05.29 06:10
단1017-20 평안하라 강건하라

  지금껏 많은 세월을 살아오지는 못했지만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불안해 하며 살아온 날들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무서운 밤길을 걸을 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시커먼 짐승이 덮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나무였다.
  청소년 시기에는 시험때마다 불안한 적이 많았다. 시험준비를 확실히 안된 탓이다. 그때는 소위 ‘타작’ 이 있었다. 과목에 따라 무서운 선생님들은 한명 한명 불러가며 타작을 했다. 점점 차례가 가까울수록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어떤 친구는 속옷 위에 내복에 체육복에 겉옷에 4중 대비책을 하고 온 경우도 있다. 그친구가 맞을 때는 소리가 ‘착’ 붙지 않고 둔탁한 소리에 바라보는 친구들은 그 공포분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또 잊을 수 없는 불안감은 군대에서 많이 경험한다. 신병들을 군기 잡느라 무지막지한 욕을 섞어가며 윽박지르고 협박하듯 하는 고참들, 그리고 내무반장... 밤에 점검하는 시간(점호시간)이 되면 청소를 한다고 했지만 꼭 꼬투리를 잡혀 기합을 받게 마련이다. 잔뜩 인상을 쓰고 군기가 바싹 들어있는 동기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웃음을 터져나오는 걸 억지로 참다가 들켜서 기합을 받은 생각도 난다.
  그 외에도 뭔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러 놓고 들킬까봐 불안해 한 적도 있다. 여러분도 다들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 줄 안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되면 더 편할거라 생각하지만, 모두에게 물어보면 그래도 어릴 때가 좋았다고 얘기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좀 늦게 되면... 혹시 얘가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또 부모님이 전화를 안받으시면..혹시... 등등~ 우리의 삶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고 여러 관계속에 살아가다보니 그만큼 신경쓰고 걱정꺼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현대사회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보리고개도 없어지고 옛날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지만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일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언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또 날마다 뉴스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들... 남의 일 같지만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나마 자기가 죽는 걸 알고 죽는 사람은(아 내가 죽어가고 있구나...) 그나마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지만 9.11테러사건이나 대구지하철 참사 같이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은 삶을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눈 깜짝할 새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좀.. 무거운 얘기만 제가 계속했죠? 자 이렇게 세상을 불안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우리는 맘 놓고 숨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착잡하기만 한게 세상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좋으니까 아멘! 하고 답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주님,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누가 염려하고 싶어서 합니까? 자꾸 염려가 되는 걸 어떡합니까? (여러분 중에 염려하고 싶어서 하시는 분 계십니까? 아무도 없죠?).. 그렇습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사실은 염려가 ‘되는 것’ 이다. 염려가 들어오는 것이다. 나 병걸리고 싶어요가 아니라 병이 들어오듯이 염려가 들어오는 것이다. 감기 걸리듯이 염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염려를 물리치는 것은 누구나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려치 말라고 강하게 명령하는 것이다. 우리가 힘들어 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품으시고 그래, 염려하지 말라, 내가 있지 않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두려움에 질려 아빠 품에 안겨 무서워요! 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아무개야! 이제 걱정하지 말아라! 아빠가 있잖니?” 그래도 무서워요...! __ “괜찮아 아빠가 지켜줄께...” 그래서 우리 주님도 말씀하신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는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을 삶의 모범으로 삼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들도 우리와 다름 없는 연약한 인간존재임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등..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피하려 했던 모세,.. 순간의 욕심을 참지 못하고 추악한 죄에 빠졌던 위대한 왕 다윗... 신약 시대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했던 제자들조차도 믿음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고 예수님을 배반하거나 모른척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으니, 또 예수님을 믿으라” 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오직 하나님만.. 예수님만.. 성령님만...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말씀드리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라는 것이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은 그야말로 흠잡을래야 흠잡을 게 없는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조국 이스라엘이 바벨론이라는 대제국에게 점령을 당하면서 다니엘도 포로로 끌려갔지만 영특한 지혜를 인정받아 지금으로 말하면 ‘장관’ 의 지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나라가 망한 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죄, 특히 하나님을 제껴둔 채 우상을 숭배했음을 알고 그는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며 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응답을 주셨다. 오늘 말씀의 상황도 다니엘이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이 환상을 통해 장래의 일을 보여주시는 상황속에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사람 다니엘에게도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단10:17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그렇다. 그 누구라도 거룩하시고 흠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가 사실 가장 염치 없고 힘든 순간이다. 내까짓게 뭘 하겠는가? 하는 생각...  아무리 사람들이 떠받들어 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부족함과 연약함에 힘이 빠지고 겸손을 넘어 무기력감을 느끼곤 한다. 사실 저도 곰곰히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보면 도저히 ‘목회’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절감한다. 모든 직분이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힘을 주신다. 18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19“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1)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 주님이 날위해 보혈을 흘려주시기까지..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우린 이미 은총 받았다)
  2)만지심 / 안수하듯 주님은 날위해 못박히신 보혈의 손으로 우리를 감싸안으신다.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보호하시고 어루만지시고 싸매어 주시사 우리의 상한 마음과 연약한 몸을 고치시는 것이다.
  3)명하심 / 쉽게 안되니까 명령하는 것 아닌가? 군대에서 명령은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를 어루만지시는 주님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으로 “저는 안됩니다” 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강하게 명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우리를 만지시고 명하시는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명령에 우리는 인간의 계산에 얽매이기보다는 “아멘!” 으로 순종함이 옳다.
  4)곧 힘이 나서 말씀 이행할 준비 완료

주님은 말씀하신다.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 염려, 근심, 걱정? 안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푸념으로 할 것이 아니라 다니엘이나 다윗처럼 기도로서 아뢸 때 주님은 어루만지시고 명하신다. 그때 이미 은총 받은 우리는 그 명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놀라운 회복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평안하세요, 강건하세요”

Comments

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