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음성&동영상

하나님의모략 // 요11:47~53

이성구 0 2,531 2003.12.28 05:59
5병2어의 기적, 눈먼 사람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기까지... 그 얼마나 환상적인가?
우리가 만일 그 시대에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본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감격적이겠는가?
그러나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라는 주님의 예언대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오늘날도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 호산나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그런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맛보신 분들이 많다. 또한 없는 가운데서도 풍성히 누리는 5병 2어의 기적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예수님이 비록 육체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 속에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저희 안에, 저희는 내안에... 예수님과의 신비한 영적 합일로 우리의 심령 가운데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이 모든 기적과 은혜가 가능한 것이다. 혹시 불치병을 고침 받는 외적인 기적은 체험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영혼이 살고 인격적으로 변화되었다라고 한다면 이는 육적인 변화보다 더 큰 것이다. 영원히 죽을 영혼이 예수님 믿고 천국가게 된 것...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는가? 호산나교회 뿐 아니라 오늘날 주님의 몸된 모든 교회에서 기적은 계속 되고 있다.

다시 오늘 본문의 배경인 옛날로 돌아가보자. 그야말로 예수님의 기적은 놀라운 것이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서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의 이런 기적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층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는 그들을 주축으로 ‘공회’라는 회의를 소집하여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비록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공회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로마의 이스라엘 통치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하고 있었다. 로마 정부와도 서로 공생하는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1)아~ 그런데 예수 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5병2어로 5천명 이상을 먹이지 않나, 눈 먼자의 눈을 고치는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신경이 예수님께 집중되는데 대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면서 질투까지 하게 된 것이다.
2)또한 예수님은 지도층 인사라고 할 수 있는 바리새인, 제사장, 사두개인 등에 대해 그들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그들을 다른 국민들이 그들을 대하듯이 예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교만을 꾸짖으시니 속이 상하였다.
3)게다가 만일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혁명이라도 일르키게 되면 결국 로마군대가 출동하여 혁명을 진압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정치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되면 자기들의 입장이 이전만 못해질 수 있고 지금까지 로마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기득권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해방되길 가장 싫어한 사람은 일본인보다 오히려 매국노였음을 기억하라.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정치나 환경의 변화의 초점은 무엇인가? 대부분 자신들의 눈앞의 이익이다. 무엇이 선인가? 무엇이 의를 이루는 것인가 보다는 그렇게 되면 나에게 얼만큼 이익이고 손해인가를 먼저 따진다. 여기가 개발되면 얼마나 우리 고장과 후손들에게 득이 되는가를 따지기 전에 금전관계로 머리가 쏠린다.

하여간 이렇게 생각해보고 저렇게 생각해봐도 예수님의 기적은 당시 기득권자인 바리새인들게 있어서 아주 안좋은 상황이었다. 예수님의 기적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질병과 심지어 죽음에서까지 자유를 누리게 해주었다. 너무너무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민족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눈에 가시와 같았다. 혹시라도 자기들에게 손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뻔히 기적을 보고 들어도 마음속은 부글부글 끓었던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당연히 축하할 일이나 배가 아파하는 것처럼,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평화와 회복의 광경을 삐뚫어진 심령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까지 살렸으니 얼마나 다급해 했겠는가? 그 사건으로 인해 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이 지경이면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백한 증인, 나사로는 물론 수없이 많은 증인들처럼 그들도 예수님을 따라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들은 당장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눈 딱감고, 양심도 딱 감고, 대책마련을 위한 회의를 한다. 오늘날의 정치권 저리가라 인 것이다.

그런데 회의중에 대제사장 가야바가 뭘 그거가지고 걱정이냐는 듯이 이런 말을 한다. (49하~50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너희들이 뭘 좀 잘 모르는가 본대, 아~ 예수 한 사람 죽으면 온 이스라엘이 다 사는걸 가지고 왜이리 호들갑인가? 하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예수라는 사람 하나 없애면 온 민족이 평안하다는 것이다. 사실인가? 사실은 예수 한 사람 죽이면 당시의 기득권자 였던 자기네들 편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온 민족이 유익하다 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마음은 온 민족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기네 특권층을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은근슬쩍 나라를 걱정하는 양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묘하게 명분을 내세워 범죄하는 정치경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좌우간 그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발언 이후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를 하게 된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상황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앞에 이러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결국 예수님은 죽임을 당함으로서 그 ‘공회’만 좋게 하고 예수님만 손해 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결국 어떠한가? 51~52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예수님이 비록 악의 무리에 의해 비참한 십자가의 저주를 받은 것 같지만 결국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게 하신 것이다.
오늘 말씀 제목이 ‘하나님의 모략’이다. 사 28: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모략 :: 한글사전에는 “꾀와 방책” ,  원어로는 “뛰어나다, 비범하다, 기이하다, 놀랍다” , 핵심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다"에 있다. 그런 까닭에 풀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는 것인데, 기이하고 권능있는 하나님의 행위가 바로 그런 것이다

기적 자체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듯,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 벌어지고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이해가 안되더라도 뛰어난 모략의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인내할 때 기대를 초월하는 크신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지혜와 모략으로 세상을 주장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세상 누구보다도 똑똑하시고 멀리 보시고 모략을 베푸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말씀안에 그 모략이 새겨져 있다. 말씀을 듣고 읽고 실천하고 믿음으로 승리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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