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 주간 새벽설교
이성구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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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17:27
17 월요일/ 찬492장, 눅 8:40-48(신105)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12살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래도 당시에 상류층인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려 딸을 고쳐달라는 부탁을 받고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능력으로 인해 소문이 많이 퍼져 있는지라 고치러 가는 길에도 인파가 밀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파 사이에 무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복잡한 틈을 타서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슬쩍 대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자는 즉시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라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많은 무리가 밀려들어 닿은 것일 뿐이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누군가에게 자신의 능력이 전달되어 치유된 것을 말씀하셨고 혈루증에서 해방된 여인은 솔직히 자신이 만졌음을 고백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책망하지 않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혈루병 걸린 여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첫째, 믿음의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사실 혈루증은 부정한 질병으로 여겨져서 사람들에게 천시 받는 질병이라 대중 앞에 나서기도 어렵거니와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질병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용기를 내서 군중들 사이를 헤집고 예수님께 가까이 왔던 것입니다. 그런 결단과 용기가 없었으면 그저 예수님을 먼 발치에서만 구경하다 집에 돌아갈 처지였고 병고침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결단과 과감한 행동이 결국은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도 미적거리며 상황과 환경을 핑계대는 것을 멈추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움직이는 용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은 평안을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고침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48절 말씀대로 ‘믿음’이 원인임을 밝히시면서 평안히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비록 예수님 앞에 떳떳이 서지 못하고 그저 밀려드는 인파를 틈타 예수님 뒤에서 슬쩍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댔을 뿐이지만 그렇게만 해도 나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것이고 그 믿음을 예수님은 인정하셨고 병고침과 아울러 평안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구원과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용기를 내서 하루 하루를 믿음의 실천으로 채워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기도 후 주기도문으로 폐회
18 화요일/ 찬493장, 눅 8:49-56(신106)
어제 본문에서 예수님은 많은 인파들로 인해서 그리고 혈루병 걸렸다 나은 여인과 대화하느라 시간이 다소 지체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 회당장의 딸은 그만 죽었고 이에 회당장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딸이 이제 죽었으니 수고롭게 행차하시지 말라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신 후 집에 도착하여 딸에게 가셨습니다. 이미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아이로 인해 울고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젠 조금전까지 울던 사람이 웃고 난리입니다. 죽은 사람이 어찌 다시 사는가? 참 웃긴다! 하는 것이지요.
그때 예수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 라고 명하실 때 죽었던 아이가 마치 자다 깬 것처럼 아이가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첫째,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을 것을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는 사람인지라 ‘두려움’ 속에 지낼 때가 많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내일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내일 일은 난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찬양처럼 그저 내일의 염려 근심 걱정 다 버리고 오늘 하루 하루, 그리고 지금 이 순간순간 까지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활신앙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아이에게 ‘잔다’라고 하셨습니다.
육적으론 죽은 것 같지만 곧 예수님이 만지시면 마치 자다 깬 아이처럼 다시 살아날 것이기에 예수님은 잔다라고 표현 하셨고 잠시 후 이 딸은 정말로 자다 깬 아니처럼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가 예비 되어 있습니다.
영생복락 면류관과 천국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에 동참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 신자들은 그저 오늘 하루만 볼 것이 아니라 날 위해 준비된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감사로 은혜로 찬양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후 주기도문으로 폐회
19 수요일새벽/ 찬494장, 눅 9:1-6(신106)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보내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열 둘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것으로 주님은 이 열 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 민족의 온전한 회복을 이루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고침의 능력과 권위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자 고치도록 내보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내보내시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하셨는데요,
첫째/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도 제자들이 순종할 땐 부족함 없이 오히려 넉넉히 활동을 했던 것입니다.
둘째/ 어느 집에 가든지 거기서 머물다 떠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일이 예상대로 잘 되고 대접을 받다보면 느슨해지기 쉽습니다. 이것은 복음 전도자라면 대접 받으며 현실에 안주하는데 익숙해져서는 안되고, 부지런히 복음 전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셋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은 발에서 먼지를 떨어 뜨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혹시 복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히 정결의식을 행함으로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줘야 할 곳은 알아서 복을 주시고 벌을 줘야 할 곳은 또한 알아서 벌을 주실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내가 할 일 – 즉 복음 전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이 명령들에 의지하여 제자들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였을 뿐 아니라 병도 고치는 놀라운 복음현장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추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우리 주님이 알아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제자답게 늘 감사하시며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지 말고 당당히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기도 후 주기도문으로 폐회
20 목요일/ 찬495장, 눅 9:7-11(신106)
헤롯은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 로마의 감독 하에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다스리던 작은 왕이었는데 이를 가리켜 분봉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지역에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한 사역에 대해 소문을 듣고 당황하게 됩니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들 중에는 죽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거나 아니면 능력의 종 엘리야 선지자가 나타났다거나 어떤 이는 옛 선지자가 다시 살아 온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바른 말 하는 세례 요한을 죽인 적이 있는 헤롯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면서도 경계를 하며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물론 그의 이런 바램은 예수님을 믿고 싶어하거나 궁금해 하기 때문이 아니라 혹시라도 자신과 정치적인 갈등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예수님을 제거하고 싶어서였던 것입니다.
한편 사도들은 예수님의 보냄을 받고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일들을 마친 후에 예수님께 돌아와서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예수님께 보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벳새다라는 고을을 향하였습니다.
근데 어찌 알았는지 무리들이 알고 따라왔고 예수님은 그들을 물리치지 않고 그들을 맞아주면서 천국복음과 병고침의 사역을 계속 이어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첫째, 회개하지 않은 죄는 계속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일찍이 ‘세례 요한’을 죽인 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하시는 모습이 세례 요한을 연상시키자 불안함을 느끼고 예수님마저 죽이고자 하는 생각을 품었던 것입니다. 죄의 행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진실된 회개가 있기 전까지 계속 그 사람을 지배하며 괴롭히고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죄에 절대 빠지지 않토록 해야 하며 혹 죄가 발견되면 즉각 즉각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무한하신 자비하심을 본받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벳새다 마을로 가셨지만 많은 무리들이 병고침과 말씀을 사모하며 몰려들었습니다. 인간적으로 피곤하고 짜증이 날만도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맞아주시고 고쳐주시고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주님을 본받아 내가 좀 희생하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진리의 복음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 후 주기도문으로 폐회
21 금요일/ 찬496장, 눅 9:12-17(신106)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고침 받는 가운데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무리들을 마을로 보내서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도록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뜬금없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명하셨고,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기 때문에 남자만 해도 5천명이나 되는 이 많은 무리들을 위해 먹을 것을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답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들로 하여금 한 50명씩 떼를 지어 앉게 한 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 제자들에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그 수많은 무리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만 열 두 바구니가 될 정도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인 것입니다.
이 기적을 베푸신 것은 물론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인 것도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보여주시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그저 한 아이의 식사꺼리 밖에 안되는 양의 음식이었지만 예수님의 손에 들리니 남자만 5,000명이니까 여자와 어린이 노인 다 합치면 2만명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모두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당장에는 쪼들리고 부족한 것 같지만 주님이 채워주시고 책임져 주시기에 차고 넘치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의 심령을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의 왕이 되신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풍성한 은혜를 누리기에 늘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늘 양식의 풍성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과거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늘의 만나를 내려 주셔주셨습니다. 이는 생명의 복음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즉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이 들어가면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고 변화 받아 그들의 삶이 변하게 되어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떡과 물고기가 예수님의 손에 들리어 감사의 기도로 올려지니 마치 하늘의 만나처럼 풍성해진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주님 보시기에 보잘 것 없는 존재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을 때 하나님은 나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기도 후 주기도문으로 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