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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이 컸던 만큼 감사도 컸어요”

이성구 0 3,076 2008.02.24 09:38
“좌절이 컸던 만큼 감사도 컸어요”
1994년 최고 가수에서 끊임없는 추락…뮤지컬로 재기 후 ‘명품’ CCM 가수로 첫발
 
그는 놀랍게도 ‘막 쪄낸 찐빵’이 되어 있다. 찜통 속에서 갓 튀어나온, 성령의 불로 데워져 후끈후끈하고 말랑말랑한 찐빵 말이다. 아빠 손을 꼭 잡고 으쓱으쓱 신이 나 있는 어린아이, 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지칭했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아빠, 나 이거”라고 투정부리면 그 분의 방법으로 채워주시는 그 아버지가 있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행복하단다.

왕년의 록커가 CCM 가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김재희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빙그레 웃으며 그가 먼저 내민 것은 CCM 음반. 까만 재킷의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금색 십자가는 확실하다 못해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저는 뜻뜨미지근한 것 싫어해요. 제가 전하는 메시지는 확실합니다. 저를 직접 만나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김재희의 음악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놀랄 만큼 신선하지만 듣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된 선율에 절절하고 서정적인 가사, 세월이 지나 한층 더 숙성된 진하고 깊은 김재희 특유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졌다. 음악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그는 기분 좋게 흥분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추락 그리고 잃어버린 14년

1994년 당시 그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사랑할수록’은 사실 그의 곡이 아니었다. 원래 부활의 리드보컬은 그의 둘째형 김재기가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음반 녹음 작업을 하던 김재기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김재기와 가장 목소리가 흡사한 김재희가 부활의 보컬이 되어 형의 노래를 알리게 됐다.

137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음반 판매고를 올리고 공중파방송 3사는 물론 각종 일간지가 앞다투어 ‘올해의 가수왕’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었지만 정작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원래 제 몫이 아니었잖아요. 그 노래는 형의 노래였고 그 자리는 형의 자리였죠. 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받을수록 속으로는 많이 울었어요. 그러면서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정말 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그는 홀로서기를 결심했고, 기획사를 옮기면서 자신의 노래가 담긴 후속 앨범을 선보였다. 그러나 기획사에 문제가 생겨 5년 동안 무대 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아 촬영을 시작했지만, 도중에 감독이 잠적하는 바람에 영화 제작도 무산된다. 그 후 여러 번의 음반 계약을 시도했지만 음반회사가 부도나고, 번번이 사기를 당해 재기에 실패하면서 그의 삶도 망가져갔다.

결국, 그는 그가 꿈꾸던 무대를 포기한다. 사채를 끌어다 포장마차를 시작했지만 불어나는 사채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빚만 잔뜩 떠안고 말았다. 삶을 포기할까, 수천 번을 생각했다.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저주하는 생활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예수가 되어 예수를 만난 남자

 
“어느 순간, 이래선 안 되겠다, 우선 무슨 일이든지 다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작정 프로필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지인의 스튜디오로 갔어요.”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뜻밖의 사람을 만난다. 뮤지컬 〈2006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총 제작감독. 그는 머리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김재희의 모습이 작품 속 예수의 이미지와 너무나 흡사해서 다짜고짜 김재희에게 물었다. “당신, 노래할 줄 아느냐.” 그가 내민 ‘겟세마네’라는 노래는 김재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록 음악이었다. 이렇게 그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음악’과 다시 조우하게 된다.

“막상 예수를 연기하려고 하니까 아는 게 있어야지요.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 집에서 성경을 읽게 되었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순간 과연 나 같은 사람이 예수 역을 해도 됩니까, 하는 기도가 터져나왔어요.”

기도를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굵은 눈물방울이 주룩 흘러내리고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그리고 짤막하고도 강렬한 음성이 귓가를 스쳤다. “그것이 너의 몫이다.”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작품 속 예수가 되어 비로소 진짜 예수를 만난, 지독하게 극적인 순간이었다.

14년 전 멈춘 심장이 다시 뛴다

“정말, 저는 이제 살았어요.” 지나온 세월이 꿈결같이 느껴지는 듯, 그가 말했다. 뮤지컬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후, 그에게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라마 OST 작업, 중국 초청공연에 참가하면서 그는 계속 노래할 수 있었다.

“제가 기도하는 족족 들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이런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주님, 제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기도는 뜻밖의 장소에서 응답됐다.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수많은 멜로디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느꼈다. 당장 샤워실을 박차고 나와 녹음기를 입에 대고 생각나는 선율을 다 읊었다. 하루 만에 여덟 곡이 완성됐다. 그 곡에 자신의 이야기와 결단을 담았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CCM 음반 ‘The Calling’.

“은혜를 받은 만큼, 나누고 싶어요. 외국 CCM들은 음악이 기가 막힌데 우리나라는 CCM이 비주류 음악에 속해요. 너무 속상하고 억울하죠. 하나님 찬양하는 음악은 최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동안 수없이 흘렸던 눈물이 더 많은 것을 주시고 더 많이 따르라 하시는 뜻임을, 그는 지금 깨달아가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첫발을 내미는 김재희. 그의 음악을 통해 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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