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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에 대해

이성구 0 3,178 2005.02.09 12:24
{본글은 전도자료 싸이트에서 제 이메일로 보낸 글을 정리해서 올린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면 죽은 조상들이 와서 차려 놓은 음식을 먹고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은 한 번 죽으면 이 세상에 다시는 올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ᅟ •ً 사람은 죽으면 즉시 하늘나라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눅 16:19-31).
우리는 지옥에서의 절규때문에라도 제사를 지내면 안됩니다.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혼들에게 먹지도 못하는 음식으로 약올리는 것이 아닌가? 죽은 조상은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제사지낼 때 오는 것은 마귀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고전 10:20)"
이 말씀에 따르면 제사를 지낼 때 조상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죄짓게 만들고 병을 주며 살인하게 만들고 도둑질하게 만들고 음란하게 만드는 마귀가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를 자주 지내는 사람들은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남을 참소하게 되고(계 12:10), 대적하며(벧전 5:8), 약해지고(요일 2:13), 거짓말하게 되며(요 8:44), 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제사를 지내면
안됩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런 생각을 가지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독교가 그토록 효도의 종교라면, 왜 교회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하는가? 어불성설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효도하라고 하면서 효도의 한 방법인 조상제사를 금하는 것은 어불성설 같이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 기독교가 이 일로 인해 불신자 분들에게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부모도, 조상도 모르는 불효자들"이니 "기독교는 좋은데 제사를 안 지내서 나쁘다"느니 하는 비판과 때로는 비방에 가까운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효에 대한 방법과 조상제사에 대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며, 기독교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습니다. 즉 제사의 방법에 있어서 우리나라 전통 양식과의 차이가 있을 뿐 제사와 유사한 의식이 기독교에도 나름대로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기독교에서는 추도식 또는 추모식이라 부르지요.
우리 기독교에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당일에 후손들이 모여서 부모님의 은공을 기리며 유훈을 되새기고, 불효한 지난 날을 참회하면서 경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단지 차이란 음식을 차리지 않는 것과 절을 하지 않는 것인데, 이것도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마다 표방하는 바 진리가 다르고 의식이 다른 것처럼, 조상제사도 종교가 다른 만큼 이를 행하는 의식이 다른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씀 드리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란 말씀입니다.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것이 유교의 의식이듯이 음식을 차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의식입니다. 타 종교인이 자기가 신봉하고 있는 종교의 의식을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듯이 우리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기독교 의식을
따름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제사에 대한 철학적 의미로는 과거지향적인 순환론적 사고입니다. 역사적으로 원래
조상숭배는 없었고, 훌륭한 왕에게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평민도 자신과 자신의 조상을 자랑하기 위해 제사 드릴 수 있도록 본질이 왜곡된 것이다.
그리고 제사는 계급차별적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 선비만이 드릴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일반 평민과 천민에게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왕권에 의해 교육적으로 강요된 것입니다. "제사를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는 식으로요...
후대에 생겨난 추가된 내용을 볼까요? 제사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잘 모시면 자손이
복을 받고, 재액이나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죽은 자(조상을 귀신으로 봄)를 대상으로 한 신앙이요(신앙적인 속성),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후기에 생겨남.  이것은 십계명중
1계명(다른 신을 섬기지말라), 2계명(어떤 모양으로도 우상을 섬기지 말라)에 어긋난다.
사후 인간영혼은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아니면, 영원히 지옥에서 버림받게 되는것이죠. 귀신이 되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인격체로 볼 수 없습니다. 죽은 자와의 관계에서는 덕이나 효등을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지는 않으나 대신 "추도예배"라는 것을 드리기도 합니다.
교계에서는 추도예배를 효과적으로 드리기 위해 "모범예식안" 같은 것도 만들어 지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절만 하지 않을 뿐 제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물론 절을 하느냐 마느냐는 경배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상숭배의 전통에서 비롯된 풍습을 형식만 조금 바꾸어서 굳이 행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행사가 많은 부분에서 비기독교적이라고 해서 산타 클로스와 마리아는 배제시키고 아기 예수만 경배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성경적인 올바른 전통에 서 있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부활절 달걀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색칠한 달걀을 주지 않는 대신 부활절 카드를 만들어 기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바빌론 신비종교의 풍습에서 벗어난 것일까요?
물론 가족들끼리 모여서 고인의 덕을 기리며 그를 추억하고 그가 못다한 일을 대신
이루자고 다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조상숭배의 관습을 따라 명절에
형식만 조금 바꾼 제사의 예를 치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 봐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사가 끼치는 영적인 나쁜 영향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행하는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미풍양속이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첫째, 이미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은 본래 우리 민족 고유의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제사의식은 유일신 하나님을 숭배하는 제사의식이었을 뿐이다. 후대에 조선 중기에 와서야 오늘날과 같은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이 유학과 샤마니즘의 영향으로 민간에 유행하게 되었으므로 사실 이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하다.
둘째, 미풍양속이라 하면 그로 인해 우리에게 어떤 좋은 영향이 있어야 하겠는데, 사실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어떤 좋은 영향을 받아왔던가?
물론 이것은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건데, 이 제사제도는 우리 민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일이 많다. 우리 한국인들은 대체로 이 제사
의식을 행하는 데 있어, 하나의 미풍양속을 행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내려오는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행할 뿐이며, 또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거나 귀신의 저주를 면해보려는 생각에서 이 의식을 행할 뿐이다.
이러한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다음과 같은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 가운데 제 2계명을 어기게 한다. 제사에는 본래 신주(神主)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신주가 분명히 우상에 속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 절을 하는 것이며, 또한 그때 우리의 마음은 복을 비거나 저주를 면해보려는 마음이기 쉽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명히 우상숭배의 영적인 죄에 해당한다(출20:4-5).
둘째, 귀신의 존재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한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들인데, 이 제사제도는 귀신은 바로 돌아가신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거나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쉽게 귀신들과 접촉하도록 만드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성경은 우리가 귀신과 접촉하는 일을 절대 금하고 있다(신18:11-12, 고전10:20).
셋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눈을 가리우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이 죽고 나면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되며(히9:27), 그 심판 후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져 들어가게 되고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다고 가르치는데(삼하12:23),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된다. 조상숭배 사상의 제사의식에 따르면 사람이 죽고 나서도 그 귀신은 계속적으로 산 사람과 비슷하게 생활하며 산 사람과 교제할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판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본래 인간은 하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일찍부터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 한계란 바로 자기의 정체를 자신이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종교(기독교를 제외한 이방종교)이며 제사의식이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주 일찍부터,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인간과 제사는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 종교와 제사의식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한계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으며, 또한 어떤
절대자에게 의지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인간이 종교와 제사의식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아오셔서 제사의식을 가르쳐주신 것으로 되어 있다.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 죄를 일시적으로 용서받는 방편으로 제사의식을 가르쳐주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창3:9, 3:21).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의 기원을 인간 편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그러면 이 제사는 우리가 행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기독교에서도 이 제사라는 형식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 구약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요, 또 그 당시에도 오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러한
제사와는 그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서든지 선교의 가장 높은 장벽은 그 나라 그 민족 특유의 민족
주의와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미신'이라고 합니다. 선교는 언제나 피선교 민족의 토착언어와 토착문화의 옷을 입혀서 복음을 전함으로 가능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상대적인 요소와 절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서로 타협하며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상대적 요소가 있는가 하면 절대로 굽힐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복음의 절대적 요소가 있습니다. 이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에서 토착화와 혼합주의의 구별이 분명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에 선교정책을 세움에 있어서 바로 이 문제로 크게 부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토착화를 위하여 토착적인 문화를 이해하며 이를 효과적 매개체로
고용하여 복음선교를 시행하였고 이 일에 다분히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우리의 문화적 특수성을 십분 이해하고 문화적 장벽을 용이하게 넘어서면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초창기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어려운 벽이 둘 있는데 그 첫째가 조상숭배요, 둘째가 술과 담배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론상으로는 간단한 듯 보이나 목회일선에서 경험하는 대로 너무나 높고 두터운 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는 믿고 싶으나 조상제사 때문에 곤란하다." "나는 장손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라는 핑계가 단순한 핑계가 아닙니다. 예나 오늘이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미신을
버리며 조상에 대한 제사를 버리고 나서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탈하는 혁명적인 사건이기
때문이죠.
신앙을 얻고 중생한 다음에 신앙적인 용기에 의해서 이를 실천한다면 또 별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전통은 먼저 미신을 버리고 술·담배를 끊고 그리고 입교하는
풍속입니다. 예수는 믿어도 좋겠으나 조상에 대한 불효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반발은 조상숭배를 미신으로 보려는 편견을 저들은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8세기 말엽에 천주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래 조상숭배와 제사를 미신으로 여겨 이를 금지했기 때문에 이것을 정치문제화하여 1871년에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신해교난, 辛亥敎難). 그 발단은 단순히 진산의 윤지충이란 천주교도가 조상의 신주를 불살라 버리고 제사를 지내지 아니했다는데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어떤 의식이든 그 의식이 가지는 뜻이 본질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뜻을 표현하는 상징적 의식이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계속될 때 그 형식자체가 교리(Dogma)화 되면서 그 뜻은 망각하고 형식과 의식 자체만이 고집되고 소중히 여겨지게 되는 예가 허다합니다. 사실상 우리의 관혼상제 의식도 이제는 그 유래와 본 뜻도 모르고 그 상징이
말하고 있는 소중한 내용은 잊혀진 채 형식만으로 시행되고 있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네 가지 의식은 우리의 전통적인 민속의식으로 소중히 지켜 왔고 이것이 없이는 사람이 사람구실을 못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게 사실입니다. 어쩌면 생각하려 들지도 않고 그저 그대로 지키며 지키는 자체에 뜻이 있는 듯 생각하기까지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서양의 관혼상제 예속(禮俗)은 주로 기독교적 종교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은 불교의식에 그리고 중국은 유교의식에 그 근거를 두고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예속은 그 뿌리와 변천과정이 아주 복잡합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한국인의 예속은 그 저변에는 주술적인 무속신앙이 깔려 있고 지금까지도 그 맥락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지극히 상징적이고 미신적 색체를 짙게 풍기는 무속적 상징이 그 형식과 내용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풍수설(風水說)과 불교사상, 유교사상 등이 전래되면서 그것들이 예속의 형식적인 면을 역사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고조선(古朝鮮)의 원시 종교였던 무교(巫敎)에는 제사풍속이 없었습니다. 무속에서는 오히려 천신(天神)을 숭배하는 제천의 풍속이 있었을 뿐입니다. 여러가지 신을 섬기는 풍속으로 천신을 숭배하는 자연종교 형태였다고 볼 수 있죠. 이러한 무속화란 민속신앙과 유교의 조상숭배 사상이 결합해서 생긴 것이 조상에 대한 제사풍속으로 발전되었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고대 조선시대에 우리 민족이 조상을 숭배해서 제사했다는 풍습을 전하는 기록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조상에 제사 드리는 풍속은 무속적인 천신제사의 민속에 유교적 사상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조 500년 동안에 우리 고유의 민속의례가 유교의 조상숭배 형식의 틀에 갇혀서 지나온 셈입니다. 유교는 봉건적이며 또 귀족적인 종교인 것이 사실이다. 결국은 상류층에서나 시행할 수 있는 조상숭배 의식이 지켜지는 동안 이 계층에는 허례허식으로 지나친 형식주의에 빠져드는 문제를 낳았고 반면에 일반 서민층에서는 이 형식에 매여서 순수한 내용과 의미조차 모르고 미신적인 예속만 되풀이해 온 셈입니다.  불교는 이 조상
숭배 의식에 약간의 영향을 준 바 있으나 극락 사상을 제하고는 결정적인 영향을 준 바 없다고 보여집니다.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은 무속신앙에 근거하여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는 것으로 믿어
왔습니다. 이 신앙이 제사의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뿌리가 됩니다. 시체를 매장할 때 여러가지 격식을 갖추려는 것은 죽은 영혼이 그 시체에 있든지 또는 배회하고 있으며 다시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민속신앙에 근거하여 조상숭배 사상과 결합할 때에 죽은 조상의 혼이 다시 찾아와 차려 놓은 제물을 먹는다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 때문에 지금도 제례를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깊은 뜻은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죽은 조상의 혼이 배회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지정된 안식소에 가 있지만 때때로
자손들을 찾아오며 특히 죽은 장소와 그가 살던 곳에 찾아오고 그 혼들이 끊임없이
자손들의 예배와 공양을 받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동시에 이처럼 극진한 공양을
받는 조상의 혼은 그 자손을 가호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 민속신앙이 발전하며 또 세속화될 때에 죽은 조상의 혼의 가호를 받고자 하는 자기 중심적 욕망이 우선되고 심지어는 이 자손들의 액운과 재해를 막아 주고 또 큰복을
내려 준다고 기복 사상에까지 내려가게 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살아 있는 늙은 부모는 자손을 돕지 못하고 죽은 부모의 혼백은 자손에게 복을 줄 수 있다는 엉뚱한 말도
나오게 되고 살아 계신 부모에게 등한시하고 죽은 후에 극진한 제사를 드리는 크나 큰 불효한 제사의식도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즉 미신적인 뿌리에 유교적인 옷을 입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제사란 죽은 이를 계속 공양함으로써 효를 계속 이어나가는 추양계효(追養繼孝)행위이지만 이것이 무속신앙과 결합하여 미신적 제사풍속이 되어 버렸습니다.

◎ 한민족 제사의 변천
1. 천신숭배 제사
본래 한민족은 유일신인 천신(하늘신)을 숭배해왔습니다. 고조선의 개국설화도 천신
숭배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단군신화의 '환인'은 '하늘님'이며 또한 '하나님'이다.). 고조선의 종교와 사회를 연구한 윤내현 교수는 그의 논문 『고조선의 종교와 그 사상』(1993, 『동양학』제 23집, 단국대학교)에서 고조선 사회는 유일신 '하나님'을 숭배하고 제사하던 사회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조선의 천신숭배 사상은
이어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의 제사의식으로 발전하였으며
오래동안 한반도에서 지속되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천신숭배 사상은 한반도 뿐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발견되는 기본적인
제사의식인데 이것은 우리 인류의 보편적인 종교성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 숭배 사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천신숭배 사상은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의 사고방식과 말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일 예로 "하늘이 노했다."라는 말이나, "아이구, 하나님(하느님)!", 또는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나님 맙소사!" 따위의 말은 모두 천신숭배 사상에서 나온 말이며, 또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생각도 다 천신숭배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2. 지신숭배 제사
천신숭배 사상이 오랜 세월 한민족의 기본적 종교형태로 내려오다가, 삼국시대 쯤부터 지신(땅신)도 섬기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신숭배 사상은 만주 지방의
샤마니즘의 영향인 듯한데, 만주 지방에서 유래된 샤마니즘은 땅의 신과 그 형상으로
돼지를 섬기던 종교의식이었습니다. 이 지신숭배 사상에서 나온 풍습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지신밟기'와 '고시래'인 것이죠.
3. 마을신숭배 제사
천신숭배에서 지신숭배로 변천해 온 제사의식은 더 나아가 마을신숭배 사상과 그 제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숭배하는 신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천신숭배 사상과 그 제사로 시작된 한민족의 제사의식은 이제 천신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기껏 마을신 정도를 섬기는 데로까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신 숭배 사상에서 나온 것이 바로 '서낭당(성황당)'입니다.
그리고 '고사'라고 하는 것은 주로 가족신을 섬기는 제사인데, 이것도 일종의 마을신
숭배 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이 마을신숭배 사상이 심하게 남아있어서 각 마을마다 섬기는 신이 따로 있고, 또 한 마을에서 어느 사람이 마을을
위해 죽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그 마을의 수호신이 된다고 믿고 섬기고 있습니다.
4. 조상신숭배 제사
천신숭배에서 지신숭배로 그리고 마을신숭배로까지 그 모습을 바꾸어온 한민족의 제사의식이 드디어 고려시대 때부터는 조상신을 섬기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주자가례'에 근거하여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4대조까지 섬기도록
하기 전까지는 신분에 따라 섬길 수 있는 댓수가 정해져 있었고, 전반적으로는 조상신에 대한 제사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런 조상신숭배 사상은 유학의 영향이 분명한데, 이 유학은 중국이 극도의 혼란에 빠졌을 때에 그 혼란을 조금이나마 막아보려고 선조의 관습을 본받자고 역설한 공자의 가르침입니다.
본래 유학은 하나의 종교라기보다는 실천도덕의 체계였다. 무정부상태와 공포의 중국 땅을 바로잡아 보려고 노력한 공자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그 전시대의 조상들처럼 바르게 살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은 구세주나 메시야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당시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상들과 다시 만나게만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유학이 한반도에서는 종교적인 색채를 많이 띠게 되었으며 나아가 샤마니즘과 연결되어 조상신숭배라는 하나의 종교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발맞추어 제사의 형식도 아주 틀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 제사 형태는 지방마다 가문마다 나름대로 독특한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조상에 대한 제사는 결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한민족 고유의 미풍양속도 아니며, 또한 그 모습이 통일된 것도 아닙니다.


[제사와 현대문화]
1. 역사로 본 제사
(1) 중국의 공자이전 夏나라와 商나라 때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다
    ▶ 부모에게 드린 것이 아니고, 뛰어난  황제에게 지냈다. 그 이유는 황제가 위대하하고 여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야호순이란 한나라임금은 부친이나 조부에게가  아니라, 요임금이 훌륭했기에 그에게 제사 지냈다.
(2) 훌륭한 임금에게만 제사를 지내는 것에서 자기 조상들이 훌륭한 것을 내세우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변절되었다  ▶ 자기위치가 더 든든해지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었다. 초기에는 왕실에서 황제들만 자기 조상에 대해 제사를 지냈으나 제후들도 제사를 지냈으며 그 다음은 재상들 역시 자기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  춘추 전국시대에 이르러 왕의 허락없이 평민도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3) 제사의 이론적인 뒷받침 : 송나라 주희(주자)가 유,불,도교의 영향받은 유교철학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라 불림)을 만들었는데 처음으로 조상에게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하나의 철학으로까지 발달하였다.
(4) 우리나라 경우 :
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는 특수왕에게만 제사지냈다. 당시 불교가 성행했던 때는 조상에게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절에 가서 제사지낸 것은 불교와 무속이 혼합하여 후대에 생긴 것이다.
나. 13세기 고려말 성리학 영향으로 사람들이 사당(위패나 신주를 모시고 제사드리는 곳)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때도 자기 조상이 아닌 훌륭한 사람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함으로 사당을 지었다.
다. 조선시대 : 중국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태조가 조상의 제사를 장려하였으나 평민들은 조정에서 장려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후에 토속신앙과 기복신앙의 영향으로 점점 성행하게 되었다.
▶ 제사를 장려한 이유 : 교육적 목적, 곧, 아주 덕이 있는 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냈으므로, 너희들도 죽은 뒤 제사를 받을 수 있도록 나라에 충성하고 덕을 쌓도록 노력하라는 식의 백성을 현혹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장려하게 되었다.
◎ 제사의 대상
* 주나라 때 : 종손을 앉혀놓고 제사드렸다(종손 : 영혼의 대변자).
* 우리나라 : 처음에는 사람의 영정이나 그림을 놓고, 그 다음은 나무토막에 이름써서 신주라는 것(이후에  위패란 이름으로 바뀜)을 만들었다가 이후 지방이라는 것을 만들어 하루만 쓰고 태워버렸다. 顯考處士府君神位이란 내용으로 쓴다.
◎ 제사의 폐단:
* 국모가 죽은후, 喪服기간이 발단이 되어 사원(교육과 제사의 기능)을 중심으로 싸움이 일어났다. 대원군이 이를 계기로 사원을 정리하게 되었다.
* 한자적인 뜻 : 사대주의 사상이 내재되어있다. 중국 갑골문자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글자가 "보일 示"  이것은 종가할 때나 제사하다의 祭에 나온다. 뜻은 상에 다리가 있고, 그 위에 음식을 놓았다는 것으로 제사상을 뜻한다. 그러므로 조상이나 제사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 제사 안 지내는 놈은 상놈이다'. '양반은 되놈(중국놈)이다'라는 사대주의사상이 숨어있는 것이다.
라. 유교가 우리의 풍속이 아닌 것을 절실히 깨달은 많은 유학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마. 결론 : 제사는 한국의 것이 아니라 중국의 풍속이다. 13세기 억지로 왕가에서 강요해서 생긴 풍속이다.  유교에서 온 사상이 변형되어 정착된 것이다.
2.철학으로 본 제사
시간에는 , 순환적 시간관(시간은 돈다, 과거지향적)와 직선적 시간관(시간은 바로간다, 미래지향적)이 있다.
(1) 유교는 순환적인 역사관(시간관)을 가졌다. 순환적 역사관의 예는 1998년이 십간십이지로 무인(戊寅)년이라고 쓰는데, 61세때 환갑이라하여 한평생을 살았고, 이제는 새 한평생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요즘 1998년이라고 쓰는 것은 시간관이 그동안 바뀐 것을 의미한다. 조선이 하늘을 반역하고 임금을 반역한 것은 예전 중국에서 왕조가 500년마다 바뀐다는 생각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2) 유교는 과거지향적 사관이다. 공자는 자기 스스로는 어떠한 새것도 말하지 않았다. 요, 순임금이 가장 위대한 왕이라 하여, 그들뿐 아니라 과거의 성현이 말해놓은 것을 말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 폐단 : 가장 쉽고 과학적인 문자를 만든 세종에게 최만리가 상소를 올려 眞書의 말을 놓고 동이족인 조그만 나라에서 글자를 바꾼 것은 안된다고 올려서 근 500년간 천한
사람들만 사용하게 되었다. 정약용같은 실학자들은 천주교 영향받아 이 사관을 고치려 제사제도를 거절하였다.
- 조상숭배를 왜 하느냐? 조상이 위대했기 때문이고, 더 위대한 이유는 그들이 옛날
사람이라는 것이다.
3.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본 제사
그런데 제사는 자연주의 세계관에 근거한다. 만물이 하늘에서 나오고 인간들은 조상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조상에게 제물을 드려 보응하는 것은 인간의 본심에 마땅하다고
믿는다.  자연주의 종교는 사람이 자연에만 순응하면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자연주의 종교가 아니라 계시의 종교이다. 반자연주의종교다. 인간 스스로 놓아두면, 구원의 길을 깨달을 수 없다.
4. 계급주의에서 본 제사
제사는 계급사회를 반영한다. 원래는 왕, 제후, 충신이나 그런 훌륭한 부류에게만 제사를 지내게 했다. "제사를 지내야만 궁중의 위대한 신하가 나온다"고 믿었다. 주나라때는 황제는 7개, 큰 제후는 5개, 작은 제후는 3, 재상들은 2, 관원과 스승은 한 개의 사당을 갖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평민들은 무덤에 가서 제사지내게 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와서 이 질서가 깨지고, 제사가 일반화되었다( 제사나 족보는 계급 사회를 반영하며, 족보도 양반자랑과 관계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평등주의와 조화가 안된다.
5. 문화의 변천과 제사
(1) 신주 : 한자로 써야지 한글로 쓰면 조상에 대한 모독, 귀신들은 한글을 못읽는다.
(2) 생활형태의 변화
그릇이나 床에 격식을 안차리고, 빌려서 제사드리는 것은 제사에 대한 관심과 의미가 사라짐을 뜻한다. 대개 열심히 제사지내는 사람가운데는 부모에게 생전에 대단히 고생을 많이 시켰기에, 죄의식에 사로잡혀 제사지내려는 사람이 많다.
기독교인은 부모 생전에 잘 섬겨야 한다. 돌아가신뒤 후회말고 살아계실 때 성심으로 모셔 친지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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