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료

성경번역사

이성구 0 2,328 2005.12.10 20:10
한글파일로도 첨부

*명언들고찰
 나폴레옹-성경은 그것에 대한 모든 반대를 정복한다.
 괴테-감옥에 갈 때 단 한권의 책만 허락한다면 성경을 택하겠다.
 뉴튼-여하간 성경만큼 확실한 진리는 없다.

*성경 본문의 해석

*한글 성경 형성의 역사
1. 한글 성경의 번역의 배경
 바실 홀과 맥스웰 대위가 1816, 9월 에 군산만에서 비인현감이었던 이숭렬에게 영어 성경을 선물로 주었다(바실의 한국항해기에 기록). 과연 그가 영어 성경을 읽고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고 이것이 최초로 성경이 전래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한국에 진리를 주시기 위한 노크였다고 할 수 있다.
 하멜 표류기 등은 한국 선교에 영향을 줌
 또한 중국에서 “신천성서”(하나님의 거룩한 책)라는 최초의 한문 성경이 출간됨-중국에 선교한 신교 최초 선교사인 모리슨 목사와 1832년 한국에 온 구출라프(독일)의 공역이다. 1818-1823사이에 발간된 것으로 여겨짐. 현재 한국 기독교 박물관에 보관
 1832년에 기록한 구출라프목사의 문정기에 의하면 구출라프는 군산만 고대도에 상륙 40일간 전도하면서 다량의 한문성서를 전했다. 특히 순조대왕에게 한문성서 2권을 헌상했다.
 토마스 순교 : 이후 약 30년후 1865-1866년에 다시 한문 성경을 가진 영국 선교사 토마스 목사(북중국 주재 영국 선교사)가 1차로 김자평의 안내를 받으며 황해도 백령도에 상륙하여 두달간 선교하면서 복음서 16권과 역사서 1권을 전했다. 2차로 평양 대동강 위에서 40일간 전도하다가 순교했다. 그의 배는 제너럴 셔먼으로 미국인 프레스톤의 배(중무장한 상선)였다. 박규수가 통역관 역할을 했는데 과연 그의 통역 능력은 어땠는지 의심이 된다. 제너럴 셔먼의 미국인들은 한국을 우스운 미개인으로 생각하고 대처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배에 불이 붙게 된다. 26세의 토마스 선교사. 한국어 3개월 배움. 하루 빨리 조선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으로 왔다. 천주교 아닌 ‘야소교’전하러 왔음.
  순교지인 장사포에서 토마스가 전해준 성경을 받은 사람들은 홍신길 소년, 석호정에서 성서를 받은 김영섭과 김종권, 만경대에서 받은 최치량이었는데 그들은 후일 강서와 평양교회의 창설자가 되었고 토마스를 죽이려던 박춘권은 안주교회의 영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성서를 벽지로 사용했다던 영문주사 박영식의 집은 평양 최초의 교회인 마팻 목사 창건의 널다리골 교회가 되었다.
 다음해 1867 역시 북중국 주재 영국인 선교사 윌리암슨 목사가 남만주 고려문에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다량의 한문 성서를 전했고 같은 해 북중국 주재 미국인 선교사 콜뱉 목사는 황해도 장연포에서 1주간 전도했다. 1868 북중국 주재 미국인 선교사 마티어 목사는 대동강하류 연안에서 약 40일간 전도하며 다량의 성서를 전했다.
 이 초기는 선교와 성서 반포를 위한 기초기간으로 앞으로 있을 한글 성서 번역의 기반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2.한글 성경 번역 초기
 만일 성경이 한글로 번역이 되지 않았다면 한국의 역사는 암흑기가 훨씬 더 길었을 것이다. 그 성경은 한국 자국내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협조를 받아 번역했고, 한국인으로 생명을 걸고 본국에 들어와 전하게 되었다.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은 1875, 주동자는 영국 선교사와 한국인 등 혼성팀이었다. 먼저 로스 목사는 1872년 만주 우장에 여장을 풀고 만주 선교를 개시했다. 로스는 다음 해 가을 제 1회 전도여행을 떠났다. 그는 여러 곳을 거쳐 압록강 상류 임강 부근에서 우연히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한 촌락을 발견한다. 그 곳은 바로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곳으로 약 3,000가구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이미 토마스의 한국 대동강 순교 사건을 들었기에 이들에게 관심가지고 전도했다. 1874년, 자신의 서기를 동반하고 다시 그곳에 가서 한글과 말을 가르쳐 줄 선생을 찾게 되었다. 이 때 압록강에서 파선 당해 알거지가 되어 온 의주 청년 이응찬을 만나 그의 허락을 받아 어학 선생으로 삼았다. 그를 인연으로 그의 친구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들이 우장으로 들어가 로스의 동료선교사인 맥킨타이어 목사와 병원장의 어학선생이 되었다. 그들은 1876년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 이전인 1875년에 벌써 예수 성교 문답과 예수 성교 요령이라는 전도 문서를 한글로 편찬했고 이어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1878년 서상윤이라는 한 의주 청년이 우장으로 들어가 로스목사에게 세례를 받았고, 성서 번역사업에 가담했다.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1879 보고서에 의하면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187에 로스목사와 한국인 서기들에 의해 번역완료되었는데 이 해에 로스목사가 안식년으로 귀국케 되어 맥킨타이어 목사가 그 업무를 이어 한국인 서기와 다시 수정을 더했다. 1882 드디어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간행되었다. 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성서였다. 1883 교정된 누가, 요한이 간행되어 합본되어 나왔고 재교정된 요한복음이 개간되었다. 1884년에 마가, 마태 간행, 1885 로마, 고전후, 갈라디아, 에베소 간행 1887 예수 성교 전서라는 신약 전권이 간행되었다. 이를 로스번역이라 흔히 말한다.
 그들은 번역 외에도 손수 한국에 복음을 전한다. 로스의 표현: “성경이 던져진 강물을 마시는 한국인은 생명수를 얻게 되며 불에 탄 성경의 재는 한국 교회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라 했다. 1883년에 중국에서 의주로 10년 만에 돌아온 백홍준은 성경을 뜯어 노끈으로 만들어 가져와 다시 펴서 책을 만들어 전도하다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1884년에는 6천권의 복음서를 전파하여 13인이 개종했고, 다음해에 세례 지원자가 79명이었으며 1887 개종 표시자가 300을 넘었다 한다.
 일본에서도 일본 성서 공회 총무였던 루미쓰 목사는 한국인 학자 이 수정과 함께 성서 번역하여 1883 말까지 신약전서를 번역완료하고 한글역 4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초고가 완료되었으며 로마서의 한글역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때 이미 재일 한국인들이 전도를 받아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있었으며 더욱이 김옥균이 크게 활약하고 있었다.

3. 한글 성경의 중기 역사
 천주교에 의한 성경 번역이 있는데 이는 1795-1800년에 이가환, 정약종 등에 의해 번역된 것으로 사복음이 있다. 그러나 큰 영향력은 없었다.
 19세기 말 한국에 큰 변혁이 일어나는데 1882 한미조약 체결로 개방의 문이 열렸다. 그 때 제일 처음으로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이가 알렌박사인데 그는 최초의 의료 선교사였다.      1885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톤 헤론 등이 왔다. 1886 배재학당, 이화학당, 예수교학당(경신학교)이 설립되고 1887 한국성서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조직원-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톤 헤론) 그해 마가복음 간행, 같은 해 새문안 교회 설립, 한인 최초의 전도사 임명(백홍준, 서상윤, 최명오 등)
  1890 언더우드 목사의 번역으로 누가복음, 스크랜톤 번역의 로마서 나옴.  언더우드는 한영문법, 한영사전 출간,
  효율적 문서 출판 위해 예수교 서회 창립.
 1892 최초의 성서 번역 위원회의 번역으로 마태복음과 선경직해 9책이 나왔다. 같은 해 찬미가와 구세론이 언더우드에 의해 출간
 1898까지 계시록 이외 모두 번역.
 중기->성경의 단편 간행기, 한국 성서 번역 위원회라는 조직을 가지고 성경 번역에 정진하며 성서 공회가 뿌리를 박는 초기이다.

4. 근세
1900 신약전서 완간
1901-04 수정본 간행
1901: 옥중의 애국지사 이상재, 이원증, 이승만, 유성준 등이 성경읽고 개종.
1902: 성서 번역차 목포 가던 아펜젤러는 기선의 충돌로 한국인 서기관과 제물포 앞 바다에서 순직
1906 신약전서는 1937 개역성경때까지 사용되어 많은 영혼 구원과 한글 재생, 한국 신문학의 모체가 됨.
1906 유성준장로는 국한문 신약 간행하여 지식층을 구원하는데 기여
1910 구약전서 완역.
1911 신구약전서->성경전서 간행
1912 관주 신약전서
1922 영한 대조 누가복음

5. 현대
 어휘 수정, 고고학에 의해 발굴된 새로운 사본들의 발견으로 전의 히브리어 사본에 수정을 가하여 더 정확한 권위 있는 히브리어 원본 성취를 이룸에 따라 1937년 개역 성경 나옴. 이 해에 신사참배 강요당함. 온갖 환란의 역사 속에 오늘날의 성경 완성

*선교의 문을 두드리는 것-->성경번역이다. 이를 위해 많은 이의 피가 흘려졌다.
<성경과 역사>
 성서는 일어나지 않는 사건을 기자에 의해 날조되었다고 공격하는 것이 비평가들의 관례였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뤄진 대다수의 고고학적 발견들로 말미암아 대세는 다른 쪽으로 기울고 있다. 심지어 역사적 관점으로 보아 매우 신뢰할 만한 기록인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 최초의 문명들이 수메리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그리고 지중해 동안 부근의 기타 지역들의 문명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현대 고고학자들은 이들 지역의 역사 연구에 엄청 노력하여 수백 권의 책으로도 모자라다. 그런데 많은 사료들이 성경의 기록들과 유사하거나 일치된다.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발견물들 중에 대홍수 이전 시대와 관계 있다. 창조와 타락, 대홍수 이전의 족장들과 대홍수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성경과 놀랄만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창조와 대홍수 같은 기록은 중요하여 그 기억들이 아담과 노아의 모든 후손들에게 구전됨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고고학: 18세기 다른 인문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고고학도 시작, 고고학이 제공하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느 성경 연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어 현금에는 지난 알의 모든 평가를 재검토할 정도이다.
 (1)고고학 연구방법
  가.텔:사람들이 한 지역에 오래 살게 됨으로써 지반이 점차 높아져서 형성된 인위적으로 만든 ‘언덕’을 말한다. 고대에 한 주거 지역이 전쟁이나 화재로 파괴되고 다시 재건되는 과정에서 주거층이형성되었는데 이러한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는 사이에 지반이 높아져서 자연히 텔이 형성된 것이다. 단층학의 기초로 각 주거층을 한꺼풀씩 벗겨나감
  나.발굴:5평방미터 정사각형 단위로 번호를 매기고 발굴, 작음 삽, 흙 터는 붓, 표면에 나타나는 색깔의 변화까지도 표시, 사진 촬영
  다.연대 결정-도기 형식학, 등잔의 모양,다양한 방법(원자)
  라.가치: 성경의 배경 연구-식생활, 건물양식, 동물 사육, 장식, 부동산 계약, 사본 채취
 (2)고고학의 공과
  아직도 2%정도만 발굴자의 삽이 닿았다. 1963당시 학자들은 북부 팔레스타인 지역에 최소 오천개의 고고학적 발굴 지점이 있다고 발표하였으나 이제까지 겨우 150여개를 발굴했고 이 중 30여개 만이 대대적으로 발굴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일부가 연구되고, 그 일부가 책으로 나타난다. 발굴이 진행될수록 성경과 일치되고 있다.

  바벨탑의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존재한다. 바빌론 신전들 중 제일 큰 것으로 보이는 탑이 발굴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 탑은 바벨론 전성기에도 이미 오래된 탑이었고, 바벨론 희생 제사에 쓸 목적으로 수리되고 재건되었다는 내용이 발견된 바 있다. 약 기원전 500년경의 인물인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여덟 개의 층과 꼭대기에 오르는 통로로 주위에 나선형의 길이 나 있는 한 건축물을 묘사했다. 그 꼭대기엔 거대한 신전이 있었으며, 그 신전은 바벨론의 신들을 섬기는데 쓰였다. 바벨론 전설엔 이 탑이 원래 니므롯에 의해 축조되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성경과 일치된다. 사실, 아랍인들은 오늘날 까지도 그 지역을 버스니므롯이라 부른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700피트 이상의 높이인데 그중 몇 백피트는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이 탑이 사실 진짜 바벨탑이 아니라면, 다른 수많은 메소포타미아의 신전들이 그러하다고 생각될 수 있듯이 최소한 그것은 바벨탑의 복제품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소년 시절의 가정은 성경에서 갈대아 우르로 언급되어 있다. 그 지명은 사실 한때는 불분명한 곳이어서 비평을 받기도 했으나 최근에 들어 발견되고 완전히 조사되었다. 비평가들은 모세 당시 서법(aft of writing)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모세시대의 기록 가능성을 부정했으나 우르와 기타 지역에서 발견된 것들은 아브라함의 때보다 최소한 수 백년 전에 문자가 넉넉히 개발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심할 나위 없이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사실 고등비평가들은 상당부분 탁상공론적인 이론들이 많다. 그런 주장들이 최근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점차 분쇄되어가고 있다. --> 이러한 수많은 고대 성읍들에서의 최그늬 발굴들은 발견 가능한 최고의 문명들이 최고였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에술과 학문에 있어서의 계속적인 퇴보가 있었다는 것을 거듭 거듭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종교도 원래는 일신교였으나 후에 다신교로 타락해 들어갔다는 것까지 드러나고 있다. 성경의 설명방식이 이해에 합당. 언어 갈라진 문제, 초기부터 어느정도의 두뇌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원시인으로부터 발전
  소돔과 고모라->그 지역이 토양을 이루고 있는 화성암과 유황가스 등을 통해 과거에 어떤 무시무시한 대파괴를 가리킴.
  히브리인들의 출애굽 사건과 애굽에 사로잡혔던 사건: 고고학적 증거들에 의해 오늘날에는 이전에 그것이 전설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지어 말했던 비평가들까지도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0가지 재앙의 경우도 그 재앙 각각이 특별히 당시 애굽인들의 종교의 어떤 국면들을 가리키고 있다. 나일강의 신들, 개구리와 파리 소의 여신들, 약과 폭풍우, 태양, 기름진 토지의 신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출생의 여신 등 이 모두가 여호와께서 보내신 재앙들로 말미암아 더할 나위없이 다신교적인 애굽인들의 마음 속에서 비참하게도 그 위신을 손상당하고 말았다(진목사님 설교중에도).
  헷 족속과의 충돌(우리야가 속한 족속)이 나오나 19세기 말까지도 헷 족속들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성경 영감설의 비판의 기회가 되곤 했으나 고고학을 통해 헷 족속들이 고대의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었던 국가들 중의 하나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에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에돔인들의 수도 바위등이 풍부한 유물들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헤렘-가나인인들의 문명과 종교는 어린아이 희생제사를 포함하여 종교적 관습에서 정기적으로 자행되는 추잡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수반되는 억제할 수 없는 사악함과 잔인함의 딸으로 타락해 들어갔었음을 보여주고 그들의 완전한 제거가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사사들과 왕 시대에도 많은 고고학적 유물들이 발견된다. 솔로몬 왕의 거대한 마굿간들이 발굴, 에시연게벨에 있었던 거대한 구리 용광로.
  팔레스타인의 탁월한 고고학자 넬슨 글루엑 박사->“성경의 언급을 부인한 고고학적 발견은 전혀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물들이 성경의 역사적 진술들을 개괄적으로, 혹은 세세하게 확증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오경의 모세 저작설->창세기의 맨 처음 부분들까지도 이집트 언어에서 빌어왔음. 어휘와 어근, 표현 방식.
  세계 최고의 도덕 법전과 하나님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장엄한 개념이 전해져 내려오던 통로가 그 원천에서 의도적인 속임수로 더럽혀져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고등비평가의 의문제기 전까지 아무도 모세의 진정한 저작에 대해 의심이 없었다. 상세한 교훈들과 각종 제도의 설정과 계속된 준수의 상세한 내용이 모세 시대로부터 계속 시행되어온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다면 짱구가 아닌 다음에야 후세에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대원에도 서울대 출신등 석학들도 공부하지만 그들도 다 감탄할 만큼 증거와 자료들이 있다. 물론 믿음으로 믿지만 의외로 많은 사료들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정훈택 교수는 한글과 컴퓨터 헬라어 자문위원이다. 교수도 빵빵하다. 미 항공우주국, 카이스트...
  다니엘서의 경우->예언들이 놀랄만큼 성취되고 있다. 고대 바벨론의 한 지점에서의 발굴은 한 건축물을 찾아내었는데 그 건물의 비문은 그 건물이 포로로 사로잡혀 온 왕족들과 귀족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는데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도 발견되었는데 그곳에 새겨진 그림과 글에는 바벨론의 신들에게 절하길 거부하는 자들을 화형시키는데 사용되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다. 왕의 칙령에 따르지 않은 자들을 사나운 짐승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데 사용되었던 대규모의 웅덩이도 발견됨. 고고학 자료들은 벨사살이 실제로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그의 궁정에서 살해되었다는 것까지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사야서의 경우->수많은 기이한 예언과 성취,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그리스도의 이름을 기독교라는 당파의 지도자요 주창자이신 분으로 언급하거나 단순히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놀랄 만큼 재빠른 성장을 언급하고 있는 수많은 명각들과 파피루스들이 발견되어 왔다.
  사도행전이나 복음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모든 성읍들과 도시들이 유물들과 함께 기자들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들을 온전히 입증해 줄 만한 그러한 곳들에 위치하고 있다. 행전에서 누가에 의해 기술된 아데미 상이 그리스의 도시들에서 발견.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쳐진 한 제단도 발굴. 가이사의 화상이 있는 동전 발굴, 로마인들의 인구 조사를 기술하고 있는 비문.
  부활 사건-하루에 5,000여 명 이상의 회심자가 나옴. 바리새인들이 병사들을 매수하여 증언하게 했듯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냈다는 논박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아 온 더할 나위없이 위대한 영적 힘과 의의 능력이 의도적인 속임수 위에 기초할 수 있는 것인가? 연약하고 망설이며 의심 많던 사람들이 별안간에 부활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복음의 대담하고 능력적이며 성령으로 충만된 선포자들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은 그 선포로 인해 물질은커녕 오히려 핍박과 죽음을 보면서도 선포에 매달렸다. 이 세상에 확립된 교회의 기독교적 제도들 즉 주일을 지키고 부활절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육신의 부활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떠나서 이러한 사람들의 종교적 봉사의 날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갑작스럽게 바뀐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인간적으로 조그만 마을의 마굿간에서 태어나 세상의 다른 민족들에 의해 멸시나 미움을 받았으며 동족에게까지 멸시를 받았던 다른 고장(나사렛)에서 양육되었다. 정규교육도 거의 못받고 뚜렷한 재능도 없고 재정적 지위나 정치적 신분도 없다. 그 분은 갖가지 부류의 장래성 없는 사람들로 이뤄진 조그만 그 분의 추종자 집단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언뜻 보아 황당해 보이는 제안들과 약속들을 하셨다. 3년 반동안... 그리고 죄수로서 로마인들의 십자가에 부당히 못박혀 죽으셨다. 그럼에도 그 분이 진정 사람에 불과했다면 그 즉시로 그 분 자신을 엉터리 사기꾼이나 미친 광신자로 낙인찍을 것이 틀림없는 선언들을 하셔왔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행하신 선언이 2000여년 간 자연스럽고 진실되며 믿을 만한 것으로 들렸고 예언의 성취가 입증되고 있고 많은 감화를 끼치고 있다. 많은 이가 그를 따르면서 죽음을 두려워 않는다. 지저분한 곳도 마다 않고 봉사를 실천한다. 오늘날 한국에도기독교가 많은 봉사를 한다. 기도원이 비록 가끔 욕을 먹으나 그나마도 아니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일부 건들다가도 자기들도 대책이 없으니 관둔다. 그러다 또 ....
  예수님의 선언;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사람이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 얼마나 사람들에 의해 믿어지고 있다. 어리석고 주제넘고 무모한가? 그러나 그의 말씀은 더욱 더 널리 전파되고 있으며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믿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의 책들보다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은 책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 씌여져 왔다.

 성경의 유통과 보존의 역사는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을 감동적으로 증거한다. 원본은 단 하나도 보존되고 있지 않으나(그것들이 있다면 사람들은 성물, 우상으로 숭배, 전쟁불사 가능) 그토록 많은 수천여 사본들이 초대 교회 시대에 만들어져 유포되어 성경을 은폐하거나 왜곡시키려는 그 어떠한 시도도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되었다. 박해의 불이나 이성적 불신의 공격도 계속적인 성경의 전승을 가로막지는 못하고 있다.
  오늘날 약 1200개 국어로 성경의 일부나 전부가 번역 출판되었으며 지금까지 저작된 그 어떤 다른 책보다도 훨씬 많은 분량이 인쇄되었다. 각 사본들의이곳 저곳에 필사의 오류들이 있을 수 있지만, 다양한 경로를 거쳐 내려온 엄청난 많은 수의 초기 사본들은 성경학자들이 가장 철저한 방법으로 성경의 갖가지 모든 구절들을 검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것을 읽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사실
수 천년 동안, 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 내용을 깨뜨릴려고 애를 써왔다. 그러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옛 이스라엘의 왕 여호야김은 예레미야가 기록한 책을 불살랐다. 그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도우사 더 많은 것을 첨가하여 그것을 다시 기록케 하셨다. 로마인과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그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가 갇혔던 감옥은 지금 사라졌지만 그가 그 감옥 속에서 기록한 성경은 오늘도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으로 비롯한 감동을 주고 있다. 303년 로마 황제 디어클레티안은 성경을 모두 없애라고 명했다. 그는 “기독교는 이제 없어졌다”라고 새긴 메달을 갖고 다니며 성경과 기독교의 탄압에 앞장섰다. 그러나 없어진 것은 디오클레티안이다. 볼테르는 1700년대에 살았던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로서 성경을 우습게 여기고 100년 안에 성경이 없어질 것을 예언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지 50년 후에 그의 출판사에선 성경을 인쇄하게 되었고 그가 살던 집은 성경을 나누어 주는 곳이 되었다. 이 외에도 성경을 없애려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며 성경은 오히려 더 많이 남아 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증거>
 성경은 여러 책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1,500년 전에 쓰여진 것이다. 그중 가장 나중의 것(계시록)은 예수님 태어난 지 100년 후에 완성되었다. 결국 모두 쓰여진 기간은 1,600년이 걸린 것이다. (단군신화 일연의 삼국유사는 비교도 안됨)  게다가 성경을 쓴 사람들은 적어도 40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누가(의사), 베드로(어부), 여호수아(군대의 지휘관), 아모스(양치기), 마태(세리), 솔로몬(왕), 느헤미야(왕의 신하), 그리고 그 밖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또 그들이 한곳에 모여서 성경을 기록한 것도 아니다. 모세는 광야를 여행하면서 성경을 기록했다. 바울은 감옥에서 성경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니엘은 왕궁에 살면서, 요한은 쓸쓸한 섬에서, 다윗은 시편의 일부를 기록할 때 적과 싸우거나 쫓기고 있었다.
 성경의 언어:원래 세가지 언어로 기록되었다. 신약은 그리스어, 대부분의 구약은 히브리어, 다니엘의 일부는 아람어로.
 성경의 형태:민족들의 역사, 한 사람의 일생, 시, 법률, 편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기록
->그러나 놀랍게도 한결같이 한 가지 주제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또 사슬같이 연결되어 있다. 창세기(2:9)는 하나님께서 처음에 생명나무를 어디에 심어 놓으셨는지를 말해주고 계시록(22:3)은 지금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창세기는 어떻게 인간의 슬픔이 시작되었는지를 말해준다. 계시록은 언제 그 슬픔이 끝날 것인가를 말해준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여러 조각들을 잘 맞추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경(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많은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성경 말씀에서 힌트를 얻어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죄를 회개하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을 그만두거나, 술이나 마약을 끊은 사람의 수자는 어마어마하다.
 존 뉴튼(1700년대 사람)-노예를 매매하던 사람으로서 한번은 그가 노예를 실은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를 항해하는 중 천둥과 폭풍이 몰려와 배가 거의 가라앉을 상황에서 두려운 나머지 하나님을 불렀다. 그 이후 그는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눅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사랑을 깨닫고 그는 이후부터 노예 매매를 반대하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405장의 작사자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많다. 김대두,

*성경자체의 증거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몇 번씩이나 이렇게 말한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렘31: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겔24:1)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록할 것을 말씀하셨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전 2:10), 그는 구약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다.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행28:25)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뜻으로 우린 ‘감동되었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무엇을 기록해야 할 지 알게 하셨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은 딤후 3:16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으로....”(영역)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말씀을 해 주셨든지 간에,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심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
 즉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기를 바랐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전해 주어야 할 말씀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담후3:15)

*예언과 성취/ 확률적 고찰
 대머리일 확률은 100분의 1, 손의 이상1000분의 1, 다리불일치 10000분의 1
 ->동시일 확률=>10억분의 1
 구약에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과 죽음을 예언한 것이 약 250회
 구약의 예언
 1.그는 근본 하나님이심
  (1)그의 근본은 상고, 즉 태초임(미5:2)
  (2)전능한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사9:6)
  (3)임마누엘(사7:14)
 2.그는 인간이 되실 것임
  (1)여인의 후예(창3:15)
  (2)한 아기(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사9:6)
  (3)처녀탄생(사7:14)
 3.그의 출생(단9:25)
  장소(미5:2)
  상태(사7:14)
 4.어릴 때 애급피난(호11:1, 마2:14-15)
 5.그의 생애
  (1)성령받고 복음전파(사61:1, 눅4:16-19)
  (2)성전청결(사66:6)
  (3)예루살렘 입성(슥9:9)
  (4)이방인에 복음 전파(사42:1,6)
  (5)멸시받음(사53:3)
  (6)친한자에게 배반 당함(시41:9)
  (7)고독해짐(시31:11)
  (8)채찍 맞고 침 뱉음(사50:6)
  (9)핍박 받으면서 침묵(사53:7)
  (10)십자가에 못박히심
    ㄱ.수족에 못박힘(시22:16)
    ㄴ.죄인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사53:9)
    ㄷ.제비로 옷 나누고(시22:18)
    ㄹ.욕과 저주(시22:7-8)
    ㅁ.십자가에서 부르짖음(시22:1)
  (11)장사됨(사53:9)
  (12)부활함
    ㄱ.부패가 없음(시16:10-)
    ㄴ.승천과 영화(시68:18, 118:16)
 6.심판후 다시 오심



<성경 영감론>
A. 영감에 대한 성경 자체의 증거
 사무엘서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이사야와 예레미야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말로 자신의 메시지의 권위를 수없이 높이고 있다. 예레미야는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권하며 내가 내말을 네입에 두었노라고 말씀하심으로(렘1:6)예레미야의 말이 하나님의 말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구약은 물론 신약도 구약의 영감과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마태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마22:43) 말했다고 기록한다. 예수 자신도 율법의 권위를 인정했다. 사도들도 역시 성서가 영감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은 “능력과 성령으로”(살전1:5)복음을 전했다. 그는 또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이외에는 감히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B. 구분
 ㄱ.기계적 영감설->4복음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약도 문체의 차이가 있다. 성경엔 다양하게 저자들의 감정 표현들이 있다.
 ㄴ.자연적 영감설->순수한 인간의 영감에 의해 기록됨.
 ㄷ. 부분 영감설->성서 안에 기록의 가치의 경중이 있다. ;그렇다면 성령의 능력에 한계가있었다는 말인가?
 ㄹ.축자 영감설-> 과학적, 역사적, 문자적 오류가 있을 수 없다.
 ㅁ.유기적 영감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체험과 언어 사상 제도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시되 인간의 개성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성서의 저자들은 수수한 저자로서 자신의 환경과 조건안에서 성서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주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전체에 드러나 있고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성경은 전체적으로 영감된 것이다.
C.성서의 통일성
 ㄱ.어휘와 주제:예수와 사도들은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구약의 어휘들을 가지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주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의, 선택, 심판, 구원, 용서 등의 주제들이 신약과 구약에서 골고루 발견되어진다.
 ㄴ. 약속과 성취: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수많은 후손과 땅을 약속한다. 선지자들과 다윗왕과도 약속한다. 이 모든 약속들이 구약을 보면 하나씩 성취되어감을 알 수 있다. 구약 내에서 성취되는 사건들도 있지만 결코 성취되지 못한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에 대한 약속은 그 성취가 신약으로 흘러 들어간다. (월터 짐멀리-“우리는 약속에서 성취를 향해 움직여가는 대 역사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다. 급히 흐르는가 하면 더러 잔잔한 역수에서 정지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 시냇물 전체는 보이지 않는 저 먼곳의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 약속이 달려가고 있는 이 역사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ㄷ.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성경의 통일성-성경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씌여졌으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엄청난 사기극인가? 참 진리의 생명의 말씀인가? 성경은 도덕을 보여주나 도덕교과서는 아니다.
모순되기에 믿는다. 그렇다 믿음은 모순되어 보이는 상황에서 필요하다. 오늘날 인식론은 깨졌다. 믿음과 결단이 오히려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는 믿기 위해 안다. 알기 위해 믿는다? 철학자들의 노력
은 헛되지 않다. 즉 적어도 철학으로 그리스도를 충분히 알 수 없음은 보여주었지 않은가?

*본문 탐색
 지구의 연대와 아담과 하와 -> 유아가 아니었다. 과일도 성숙 /연대측정법의 허와 실
 지구의 형성->감싸 돌리시니라 -->이렇게 성경공부가 중요하다. 여러분도 조전도사님의 계획에 따라 진리의 말씀을 먹으라.

 많이 읽어야 많이 먹는다.
선포로서의 말씀: 독특한 양식, 왜 굳이 책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선포로서 듣는가? 이것이 복음의 성격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부딪쳐 이기는 능력->이것이 기독교의 묘미?  (손양원, 주기철)
#여러분 도박을 좋아하나요?
도박의 원리로 전도한 이(파스칼);안전의 원리-큰 돈 못만져도 위험부담 적은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성경이 맞는다면 그래서 지옥가게 된 다음
*성경이 틀리다면 아쉬울 뿐이다. 못놀고 즐긴게... 그러나 교회에서도 즐거운 삶을 즐기고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서기관들의 역할> 
서기관: 기록자, 세는자 -전승 사역, 수정, 성경본문 기록과 계수(일점일획)
    절수, 단어수, 자음수 계수하여 각책의 끝에 기재함.
  한 단락의 내용이 끝날 경우 행을 안 바꾸고 공란에 ‘페’자를 기록하여 휴식표시
  단락과 단락 사이의 큰 휴식은 ‘페’를 3개, 이는 장 구분의 표식인 듯
 절과 절 사이의 특별한 구분은 싸멕(히브리알파벳중 하나)을 넣어 간격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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