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료

신10:14

이성구 0 1,869 2004.03.22 03:57
신명기 10:14절 주해            [2003.3010.36(실천3학기) Th.M 이성구 목사]

1. 본문: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2. 본문 대제목: 만유의 주, 역사의 주 되신 하나님[이웃을 품에 안고 거듭나는 한국교회]

3. 본문 소제목: 1) 인류의 역사, 모든 생명들과 사물들의 주인 되신 하나님[ “ ]

4. 주해
■신명기 10장의  내용 - 9장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 결코 자만하거나 교만심에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를 금송아지 숭배 사건을 중심으로 설명했었다. 본 10장은 내용상 9장의 연속으로, 우상 숭배로 인해 파기되었던 하나님의 언약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었음과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함을 일러주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세 단락으로 이뤄져 있다.
ㄱ. 1-5절: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두 번째 십계명 돌판을 받은 사건
ㄴ. 6-11절: 아론의 뒤를 이은 엘르아살의 제사장직 계승 및 성막 봉사를 위한 레위 지파의 구별 등과 같은 금송아지 사건 이후의 이스라엘의 체제 정비 사례
ㄷ. 12-22: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으니 이스라엘은 그분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에 순종할 것을 촉구하는 권면이다.
  우리가 이상의 본문에서 얻는 교훈은, 오늘날 패역한 죄로 인해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들도 멸망당하지 않고 살아갈 뿐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고 있는 우리 모두로 하여금 매일의 삶을 그분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계도해 주기에 충분하다. [호크마종합주석]

■이 말씀은 위에 관설된 하나님 봉사의 이유에 대하여 말한다. 곧,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시며, 말할 수 없이 위대하신 영광의 주님이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모든 민족들 중에서도 특별히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택하셨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형용할 수 없이 놀라운 은혜이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생활에 있어서 전심전력해야 될 것이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경건은 하나님 제일주의이다. 우리 신자들에게 하나님 이상은 없다. [박윤선 주석 (14-15절)]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 본절의 표현에 대하여선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하늘의 광대 무변함과 장중함 그리고 지고함을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수사학적 표현이라는 견해이다. 둘째, 하늘은 상중하 3층으로 되어 있다고 믿는 히브리인들의 우주 개념을 보여 주는 구절이라는 견해이다. 이 중 후자는 셋째 하늘에 대하여 이야기한 사도 바울의 사상과 일견 일치되는 듯하나(고후 12:2), 실상 그가 말한 셋째 하늘은 눈에 보이는 공중과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그리고 천국을 염두에 둔 말일 뿐이다. 또한 히브리인들엑 있어서 ‘3’이란 숫자는 더없이 높고 절대적인 것을 뜻하는 완전수이다. 따라서 본절의 경우 전자의 견해가 타당한데, 성경에는 이왕 유사한 표현으로 ‘종들의 종’, ‘왕 중의 왕’, ‘노래 중의 노래’, ‘거룩함 중의 거룩함’ 등이 있다(17절;계17:14;19:16). [호크마종합주석]

■적용 - 오늘날 성도들은 혈통적으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요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 수 이다. 평소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갑갑함 중에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반과 죄악이다. 또한 동족끼리도 서로 억압과 착취, 반목과 시기 질투가 자행된다는 것이다.
  혀를 차면서도 알고 보면 이러한 일들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 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본문은 금송아지를 섬겼던 패역한 백성들에게 다시 두 돌판을 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리고 용서의 사건을 통해 오늘날 성도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인내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긍휼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약자와 소외계층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성도들 역시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면에 앞서 14절 본문의 선포가 기록된 것이다.
  사실 이 세상 전우주의 모든 만물들은 다 주님의 것이다. 우리가 숨쉴 수 있는 것, 혹 육신이 건강치 못하고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생명이 연장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유인 양 움켜 쥐려고만 하고 확보하려고만 한다. 잠시 위의 대전제를 망각했거나 무시한 처사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진정 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것이다 심지어 생명조차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을 찬양하기에 앞서서 ‘생명 있음’을 그리고 생명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따라 약자를 돌보기 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히 기억하고 그 하나님이 패역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바로 그분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요, 나는 그 온 우주의 한 점의 일부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임을 인식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는 진정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으며 담대하게 주님의 공의를 온 땅에 선포하고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시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그 실현에 있어서 소외된 이웃이 포함됨은 당연한 것이다. 나나 이웃이나 모두 하나님의 소유요 한 백성이요 한 자녀인 것이다. 우리는 다시 제공된 십계명 돌판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정신을 딱딱한 법조문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명령 실천의 기회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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